의리없는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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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의리없는 전쟁은 이이보시 코이치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후카사쿠 긴지 감독이 연출한 일본 야쿠자 영화 시리즈이다. 1973년 개봉한 1편을 시작으로 총 5편의 오리지널 시리즈와 3편의 신 시리즈가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히로시마 야쿠자들의 항쟁을 실화에 기반하여 다루었으며, 당시 일본 사회의 부패와 폭력을 생생하게 묘사하여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실록 노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핸드헬드 카메라, 줌 렌즈, 히로시마 사투리 등을 활용한 독특한 연출 기법을 선보였다. 영화는 권력의 암투, 배신,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일본 영화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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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없는 전쟁 - [영화]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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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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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仁義なき戦い |
로마자 표기 | Jingi Naki Tatakai |
감독 | 후카사쿠 킨지 |
각본 | 카사하라 카즈오 |
원안 | 슌도 코지 (구상) 이이보시 코이치 (원작) 미노 코조 (원작) |
제작 | 슌도 코지, 쿠사카베 고로 |
주연 | 스가와라 분타, 마츠카타 히로키, 카네코 노부오, 다나카 쿠니에, 이부키 고로 |
내레이터 | 코이케 아사오 |
촬영 | 요시다 사다지 |
편집 | 미야모토 신타로 |
음악 | 츠시마 토시아키 |
제작사 | 도에이 |
배급사 | 도에이 |
개봉일 | 1973년 1월 13일 |
상영 시간 | 99분 |
국가 | 일본 |
언어 | 일본어 |
제작 정보 | |
원작 | 이이보시 코이치 |
2. 원작
이이보시 코이치(飯干晃一)의 논픽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 소설은 1972년 5월 19일부터 『주간 산케이』에 "히로시마 야쿠자·유혈 20년의 기록, 정의 없는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으며(총 46회), 히로시마 항쟁의 당사자 중 한 명인 미노 고조(美能幸三)가 아바시리 형무소에서 복역 중에 집필한 원고 용지 700장에 달하는 옥중 수기를 바탕으로 한다.[36] 여기에 이이보시가 당시 상황을 덧붙여 썼다.[36] 전후 히로시마현에서 발생한 「히로시마 항쟁」에 당사자로서 관여한 미노 코조가 아바시리 형무소에서 복역 중에 집필한 원고 용지 700장에 달하는 수기를 기반으로 한다.[36]
이이보시 코이치가 週刊サンケイ일본어에 연재한 기사를 각색한 작품으로, 실제 야쿠자 미노 고조가 아바시리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쓴 원고를 다시 작성한 것이다.[2] 이 회고록은 히로시마현에서 발생한 야쿠자 분쟁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미노가 옥중 수기를 집필하게 된 계기는 주고쿠 신문 보도부 기자 이마나카 와타루가 『문예춘추』 1965년 4월호에 기고한 수기 「폭력과 싸운 주고쿠 신문 - 기쿠치상의 영광에 빛나는 "펜은 폭력보다 강하다"」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 때문이었다.[36] 미노는 『문예춘추』에 게재된 이 수기를 우연히 발견하고 "10일 동안 밥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다. 싸움의 장본인이 자신으로 단정된 데다가, 전혀 기억에 없는 내용까지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36] 특히 미노는 "우치코시회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부분에 자존심이 상했다.
미노는 『주간 산케이』에서 연재가 결정되었을 때, 「등장인물을 모두 실명으로 게재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실명을 내면 문제가 발생할 것을 알았지만, 명예 회복을 위해서였다.[36] 1971년 가을, 『주간 산케이』의 야무라 다카시 편집부 차장은 게재 허가를 받기 위해 도쿄의 호텔에서 미노와 만났다. 미노는 원래 제3자에게 수기를 읽힐 생각은 없었지만, 다섯 번째 협상에서 드디어 게재를 승낙했다.[36]
원작 소설은 정치인, 연예인, 프로 야구 선수 등 야쿠자와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 단체, 지명을 모두 실명으로 게재했으며, 수기와 해설이 한 쌍이 되어 히로시마 항쟁이 사건과 행사별로 시계열에 따라 진행된다.[36] 『주간 산케이』에서 연재가 시작되자 압도적인 인기를 얻어 인쇄소에서는 게라 쟁탈전이 벌어졌다고 한다.[36]
제2차 히로시마 항쟁 당시 주고쿠 신문은 펜의 힘으로 폭력단에 맞서는 「폭력단 추방 캠페인」을 전개했고, 그 성과를 『어떤 용기의 기록: 흉기 아래의 취재 노트』로 출판하기도 했다.[37] 이 캠페인으로 주고쿠 신문은 1965년 제13회 기쿠치 간 상을 수상했다.[37] 『어떤 용기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텔레비전 드라마 (NET, 1966년 10월 - 1967년 1월)도 제작 방송되었다.[37] 이케가미 아키라를 비롯해 이 드라마를 보고 저널리스트를 지망한 사람도 많다.[38]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에는 『정의 없는 전쟁』에 비해 『어떤 용기의 기록』의 인지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아졌다. 『어떤 용기의 기록』 제작에 협력한 히로시마현 경찰은 『정의 없는 전쟁』의 영화화에 즈음하여 폭력단 추방 캠페인도 될 것이라고 생각해, 처음에는 제작에 협력해 주었다.[37]
영화화되기까지의 경위에는 여러 설이 있으며, 이미 고인이 된 당사자도 많아 진상은 불명이다. 히로시마현구레시 미노조의 전 조장인 미노 고조가 1970년 9월, 아바시리 형무소에서 출소했다. 옥중에서 쓴 700장에 달하는 수기의 존재를 재회한 지인이 알고, 맡아둔 수기를 여러 출판사에 가져갔다. 이것이 편집자에게서 편집자에게로 넘어간 후, 『주간 산케이』가 "이건 재미있으니 꼭 연재를 하게 해 달라"고 하여, 『주간 산케이』는 그 해설자로서 이이보시 코이치를 선정하게 되었다. 『주간 산케이』는 수기를 입수한 시점에서 이미 도에이 사장인 오카다 시게오에게 영화화에 대한 이야기를 타진하고 있었고, 게라 인쇄의 내용을 오카다는 가지고 있었다.
1971년 봄, 도에이 교토 촬영소의 히시카베 고로 프로듀서와 가사하라 가즈오가 이이보시의 장편 2작품 『야쿠자 대 G맨 미끼』의 영화화 권리 획득 교섭을 위해 이이보시의 자택을 방문했을 때, 이이보시로부터 미노의 수기를 보여주었고, 당시 히시카베는 슌도 고지 프로듀서 밑에 있었지만, 영화화에 의욕을 불태웠다는 설도 있다.[42] 히시카베는 이이보시에게 그 자리에서 영화화 권리를 신청했다고 말한다.
1972년(쇼와 47년) 5월에 『주간 산케이』에 연재가 시작된다. 본 연재는 "대부 일본판"이라고 명명되었다. 같은 해 9월에 오카다 사장이 시나리오 작성을 가사하라 가즈오에게 지시했다. 가사하라에게는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도에이 사원이라는 신분이기도 하여, 어쩔 수 없이 수락했다. 가사하라의 『노트 "인간 없는 전쟁"의 300일』에 따르면, 실존하는 등장인물이나 조 관계자가 어떻게 반응할지 짐작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가사하라도 영화화는 실현 불가능하다고 망설였지만, 오카다 사장의 강한 지시로 취재에 착수했다. 실제로 미노와 면회한 결과, "구레에서의 항쟁 사건만이라면 어떻게든 정리할 수 있다"고 받아들였다.
1968년의 『인간 어뢰 아, 회천 특별 공격대』에서, 에타지마로케를 했을 때, 히시카베가 자주 다니던 구레의 스낵이 미노도 단골 손님이고 엄마가 만날 약속을 잡아줬다. 첫 방문은 1972년 9월 30일. 이 전전날인 9월 28일에 슌도의 인맥을 사용하여, 당시 교세이 회 2대 회장이었던 핫토리 다케시와 만나 사건의 개요를 취재했다. 미노에게서 계속 허벅지를 만져지며 미노와의 해후는 이중의 의미로 공포 MAX로,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영화 따위 믿을 수 없어!"라는 미노의 한 마디에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그런데 미노가 쫓아와 "모처럼 왔는데 구레역까지 데려다주겠다"라고 해서, 길가의 잡담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전중 함께 해군의 오타케 해병단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미노는 기뻐하며 자택까지 초대했다. 미노와 술을 나누며 나눈 이야기가 『인간 없는 전쟁』의 <핵심>이며, 상상으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기묘한 에피소드와 이야기는 여기서 출발한다. 헤어질 때, 미노에게 "절대로 영화로 만들지 않겠지"라고 확인받아 "안 합니다!"라고 대답하고 귀경하여, 바로 각본에 착수했다. 히시카베가 "미노 씨, 당신, 원한을 풀기 위해 쓴 거잖아요. 그럼, 철저하게 합시다! 영화라면 더 효과가 있을 겁니다" 등이라고 부추기고, 다카이와 단의 거듭된 회유 교섭에 의해, 미노는 드디어 영화화를 승낙했다. 가사하라의 각본 제1고는 1972년 11월 11일에 완성.
영화가 제작된 1970년대 초는 히로시마 항쟁은 아직 불타올랐고, 약간 위험한 상황이었다. 도에이 선전부의 후쿠나가 구니아키는, 선전도 철저하게 <실록>으로 밀고 나가려 했고, 제1편의 제작이 결정되자마자 히로시마에 들어갔지만, 현지는 타오르는 야쿠자 항쟁에 예민해 있었고, 현지 매스컴도 "폭력 추방 캠페인"이 한창이라 영화는커녕 상황이 아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 소재는 과거에도 도에이를 비롯한 각사가 영화화에 착수했다가 좌절하는, 라는 보증된 난물이었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히로시마 야쿠자를 그다지 자극하지 않도록 당사자에게는 취재하지 않고, 단기간의 촬영으로 정월 두 번째 주 정도의 병영작(덧붙이는 것), 논 스타, 1시간 10분 정도의 흑백 작품으로 제작할 예정이었다. 그것이 보통 사이즈의 컬러 작품으로 제작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도에이 내부에서도 후환을 두려워해 영화화에 소극적인 목소리가 있었지만, 히로시마 출신인 오카다 사장만이 홀로 의욕에 넘쳐 실현에 이르렀다.
3. 제작 배경
스가와라 분타는 이 회고록을 영화로 각색하자는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이 자신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신칸센에서 우메미야 타츠오와 함께 ''주간 선데이''를 읽고 슌도 코지에게 영화화를 제안했다고 한다.[5] 그러나 영화화되기까지의 경위에는 여러 설이 있으며, 이미 고인이 된 당사자도 많아 진상은 불명이다.
히로시마현구레시 미노조의 전 조장인 미노 고조가 1970년 아바시리 형무소에서 출소한 후, 그의 옥중 수기가 여러 출판사를 거쳐 『주간 산케이』에 연재되었다. 도에이 사장 오카다 시게오는 『주간 산케이』 편집장으로부터 이 수기를 받아보고 즉시 영화화를 결정했다. 오카다는 다테마쓰 와헤이와의 인터뷰에서 "『주간 산케이』 편집장이 '인간 없는 전쟁'이라는 좋은 소재를 가져왔다. 각본은 카사하라 카즈오에게 부탁했고, 후카사쿠 긴지 감독에게는 실록, 실증적인 영화가 더 좋다고 생각해서 맡겼다"고 밝혔다.
오카다는 영화화를 위해 원작자를 내세우는 방안을 『주간 산케이』에 제안했고, 이이보시 코이치가 원작자로 선정되었다. 1971년 봄 또는 1971년 말, 도에이 교토 촬영소의 히시카베 고로 프로듀서와 카사하라 카즈오가 이이보시 코이치로부터 미노의 수기를 보여주었고, 영화화에 의욕을 불태웠다는 설도 있다.
오카다는 1971년 사장 취임 후, 세습 문제와 조합과의 대립 등 여러 문제에 직면했다. 그는 "임협 영화 노선"이 매너리즘화되면서 쇄신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1972년 『대부』가 대히트하자 마피아 영화적 세계관을 일본 영화에서 재현하고자 했다. 오카다는 『키네마 준보』 1972년 9월호에서 "도에이에서도 일본판 마피아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1972년 9월, 카사하라 카즈오에게 시나리오 작성을 지시했다. 가사하라는 내키지 않았지만, 도에이 사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락했다. 가사하라는 미노 고조에게 직접 만나 영화화에 대한 허락을 받았고, 히로시마 항쟁의 진실을 들을 수 있었다.
1970년대 초, 히로시마 항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위험한 상황이었다. 도에이 선전부의 후쿠나가 구니아키는 선전을 위해 히로시마에 들어갔지만, 현지 매스컴은 "폭력 추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어 어려운 상황이었다.
실록 노선으로의 전환은 슌도 고지가 추진해 온 임협 영화의 부정, 및 종료를 의미했지만, 전국 직영관의 관주도 새로운 노선의 전환을 지지했다. 오카다가 없었다면, 일련의 "실록 야쿠자 영화"는 제작할 수 없었다고 많은 관계자들이 말하고 있다. 우메미야 다쓰오는 "'인간 없는 전쟁'은, 상혼이 넘치는 오카다 사장이 '대부'가 대히트했으니 '미국이 마피아를 하면, 일본은 야쿠자다.'라고 생각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45]
실제로 도에이와 영화화 계약을 맺은 것은 원작자인 이이보시 코이치이며, 미노 고조는 이이보시 코이치로부터 전혀 상담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다카이와 단과 교토 촬영소의 하타 토시아키가 미노를 찾아가 며칠 밤을 묵으며 집요하게 부탁하니, 미노는 굴복하여 영화화를 승낙했다.
1972년(쇼와 47년) 5월에 『주간 산케이』에 연재가 시작된다. 본 연재는 "대부 일본판"이라고 명명되었다. 1972년 11월 21일, 도에이 본사에서 제작 발표 기자 회견이 열렸으며, 후카사쿠 긴지 감독, 스가와라 분타, 마츠카타 히로키 등 6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1973년 1월 13일 개봉이 발표되었다.
3. 1. 각본
가사하라 가즈오는 1972년 9월 1일에 각본 의뢰를 받고, 9월 29일 프로듀서 쿠사카베 고로와 함께 원작자 미노를 만나기 위해 구레시로 갔다.[2] 미노는 자신의 삶이 폭로된 것에 대한 비난을 우려하여 처음에는 영화화를 거절했지만, 가사하라와 미노 모두 오타케 해군 장교 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영화화를 승인했다.[2][6] 가사하라는 교세이카이의 야마무라 다쓰오에게 반항하여 살해당한 하부조직 간부 사사키 데쓰히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2] 그는 1936년 영화 ''라 벨 에키프''를 액션 연출의 지침으로 삼았고, 현실과 인간 드라마를 혼합하는 방식으로 각본을 썼다.[2] 가사하라는 야쿠자 내부 항쟁과 권력 다툼을 중심으로,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심리 묘사와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그는 히로시마 사투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영화의 현실감을 높였다. 특히, 오카다 시게오의 히로시마 사투리 어조를 떠올리며 스가와라 분타나 카네코 노부오의 대사를 썼다고 한다. 가사하라는 철저한 자료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각본을 집필했으며, 69일 만에 각본을 완성했다.[2]
3. 2. 연출
후카사쿠 긴지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핸드헬드 카메라, 줌 렌즈, 자연 조명을 사용하여 전후 혼란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세대의 투쟁을 "거칠고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묘사했다.[9][10] 이러한 흔들리는 카메라 기법은 이후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영화는 토에이 교토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는데, 이는 후카사쿠 긴지가 토에이 도쿄와 계약을 맺고 있었음에도 이례적인 일이었다.[11] 후카사쿠 켄타는 그의 아버지의 친구 나카지마 사다오가 토에이 교토의 최고 스태프를 후카사쿠와 함께 일하도록 주선했다고 언급했다.[8]
야외 촬영 장면은 스튜디오에서 리허설을 거친 후, 실제 장소에서 "게릴라 스타일"로 촬영되었다.[8] 예를 들어, 히로시마역에서 신카이 우이치가 칼에 찔려 죽는 장면은 교토역 플랫폼에서 허가 없이 촬영되었다.[8] 구레에서 야외 촬영을 할 때는, 영화 속 인물들의 모델이 된 야쿠자들이 촬영장에 모여 감독과 배우에게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6]
이 시리즈는 특정 주연 배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조연 배우들이 활력을 불어넣는 앙상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13] 스가와라는 이것이 모든 장면에 주연 배우가 등장하지 않는 최초의 토에이 영화이자, 최초의 일본 영화라고 말했다.[5]
3. 3. 등장인물
영화에는 스가와라 분타, 마츠카타 히로키, 카네코 노부오 등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여 열연을 펼쳤다. 각 배우들은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야쿠자 세계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주요 출연진은 다음과 같다.
; 주요 출연진3. 3. 1. 주요 출연진
3. 4. 시리즈 목록
《'''의리없는 전쟁'''》은 홈 비디오로 출시되었으며, 일부 장면이 편집된 채로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다.[14] 1980년에는 처음 4편의 영화가 224분 길이로 편집되어 제한적인 극장 개봉과 도에이(Toei) TV 네트워크에서 방영되었다. 시리즈 5편의 영화를 모두 담은 블루레이 박스 세트는 40주년을 기념하여 2013년 3월 21일에 출시되었다.[14]
시리즈 5편의 영화는 모두 2004년 홈 비전 엔터테인먼트(Home Vision Entertainment)에서 '야쿠자 페이퍼스'(The Yakuza Papers)라는 이름으로 북미에서 DVD로 출시되었다.[15] 이 모든 영화를 담은 6 디스크 DVD 박스 세트도 출시되었는데, 여기에는 미국에서 영화가 미친 영향에 대해 논의하는 감독 윌리엄 프리드킨(William Friedkin)과의 인터뷰, 영화 작업에 대해 논의하는 자막 번역가 린다 호글런드(Linda Hoaglund), 데이비드 E. 캐플런(David E. Kaplan), 후카사쿠 겐타(Kenta Fukasaku), 구로사와 기요시(Kiyoshi Kurosawa), 도에이(Toei) 프로듀서, 전기 작가 등의 보너스 디스크가 포함되어 있다.[15] 애로우 필름(Arrow Films)은 2015년 12월 7일 영국에서, 그 다음날 미국에서 시리즈 5편의 영화를 모두 담은 블루레이 및 DVD 박스 세트를 2,500개 한정판으로 출시했다.[16] 특별 부록으로는 시리즈의 격투 안무가 우에노 류조(Ryuzo Ueno)와의 인터뷰와 1980년 편집된 처음 4편의 영화가 포함되어 있다.[16]
첫날 막이 오르자 기록적인 히트를 기록했고 전국적인 대히트로 롱런이 결정되었으며(2주 → 3주), 배급 수입 5억 엔은 확실시되었다. 제1작 촬영 중 1972년 12월에 시리즈화가 결정되어 속편은 골든 위크 공개가 유력시되었다. 사토 타다오는 "『의리 없는 전쟁』은 완전히 『바라키』를 넘어섰다"고 칭찬했다. 제2부에서는 히로시마 사건을 다루려 했으나, 야마구치구미와의 관계 및 원작 미완성 등의 문제로 인해, 24세에 자결하는 킬러 야마가미 코지를 중심으로 각본을 쓴 제2부 『의리 없는 전쟁 히로시마 사투편』이 제작되었다.
당초 사사키 테츠히코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으로 끝낼 예정이었으나, 시리즈화를 위해 미요를 주인공 모델로 대체했다. 제2부에서 스가와라의 출연 분량이 적다는 것에 대한 갈등이 있었으나, 결국 스가와라가 계속 출연하게 되었다.
1973년 3월에 시리즈를 4부작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제4부 『의리 없는 전쟁 정상 작전』으로 이야기를 종결시키려 했으나, 오카다의 요청으로 제5부 『의리 없는 전쟁 완결편』이 제작되었다.
1974년 『의리 없는 전쟁 완결편』으로 20년에 걸친 히로시마 야쿠자 전쟁 서사시는 막을 내렸지만, 오카다 사장의 "총알은 아직 남아있다!"라는 한마디에 강제로 시리즈가 속행 결정되어, 『신 의리 없는 전쟁 시리즈』가 제작되었다. 그러나 이 시리즈는 전 5편과는 거의 관련성이 없으며, 오카다 사장이 "이 제목으로 내면 아직 손님이 들어올 거야"라는 이유로 붙여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구 5부작에 비해 신 3부작은 한 작품마다 고립된 내용이 되었다. 신 시리즈에서는 여성이 전면에 부각되었는데, 이는 실록 노선의 소재 고갈, 여성 관련 뒷이야기나 정사를 늘리려는 의도, 각본가 타카다 코지로의 영향 등이 작용한 결과이다.
신 시리즈 1편 『신 의리 없는 전쟁』은 히로시마를 무대로 한 5부작의 재탕이었지만, 2편 『신 의리 없는 전쟁 조장의 목』은 기타큐슈를 무대로 주인공을 히로시마 항쟁과는 전혀 연고가 없는 떠돌이로 바꾸어 버렸다. 『신 의리 없는 전쟁 조장 최후의 날』 또한 실록이 아닌 모델이 없는 픽션이었다.
『신 의리 없는 전쟁 조장의 목』에서는 야마자키 츠토무가 마약 중독자로, 니시무라 아키라가 출연, 히시미 유리코가 호스티스 역으로 출연하고 있다.
동 시리즈에는 최종작으로 제작을 예정했던 영화 『호쿠리쿠 대리 전쟁』이 있었는데, 본작은 영화 제작이 원인이 되어 모델이 된 야쿠자를 자극하여 실제로 모델이 된 조장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본작은 스가와라 분타가 하차하고 마츠카타 히로키가 주연을 맡았으며, 흥행에는 실패했다. 후카사쿠는 『호쿠리쿠 대리 전쟁』을 계기로 실록 노선을 끊었다.
2003년 4월 21일에 "신 의리 없는 전쟁 시리즈"는 "신 의리 없는 전쟁 DVD-BOX<3장 세트>"가 DVD-BOX로 발매되었다.
2013년 3월 21일에 발매된 블루레이 박스에 보너스 디스크로 수록된 『총집편』은, 1980년 4월에 변칙적인 시스템으로 극장 공개되었다.
;후카사쿠 오리지널 5부작
;후카사쿠 신 시리즈
;다른 감독 작품
4. 평가 및 영향
仁義なき戦い일본어는 일본 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영화는 '실록 노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으며, 이후 일본 영화와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4],[41] 영화의 폭력성과 현실성은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야쿠자 영화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40]
1973년 키네마 준보에서 선정한 최고의 영화 목록에서 2위를 차지했다.[17] 1974년 키네마 준보 어워드에서 독자 선택상, 스가와라 분타는 남우주연상, 가사하라 카즈오는 각본상을 수상했다.[18] 2009년에는 키네마 준보가 선정한 역대 일본 영화 10선 종합 목록에서 5위에 올랐다.[19] 이전 목록에서는 1995년 22위, 1999년에는 24개의 눈동자와 함께 8위를 기록했다.[20][21] 2011년 컴플렉스는 최고의 야쿠자 영화 25선 목록에서 이 영화를 1위로 선정했다.[22] BFI는 1925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최고의 일본 영화 목록에 ''의리없는 전쟁''을 1973년 작품으로 포함시켰다.[23] BFI에 글을 기고한 재스퍼 샤프는 이 영화를 10대 일본 갱스터 영화 중 하나로 꼽았다.[24]
A.V. 클럽의 노엘 머레이는 후카사쿠의 야쿠자들이 "자신들에게 가장 이익이 될 때만 명예 규율을 지키며, 그렇지 않을 때는 무차별적으로 괴롭히고 죽인다"고 말했다.[25] ''더 빌리지 보이스''의 데니스 림은 "후카사쿠의 야쿠자 영화는 범죄 암흑가에서 로맨스를 배제하고, 명예 규율을 짓밟으며, 선과 악의 구분을 무효화한다"고 썼다.[26] 영화 학자 리처드 토런스는 이 영화가 "폭력이 도덕적 의미를 결여하고 영웅 없이 존재하는 전후 시대의 더 넓은 사회와 국제 질서의 축소판" 역할을 한다고 제시한다.[27]
후카사쿠의 전기 작가 사다오 야마네는 ''의리없는 전쟁''이 개봉 당시 시기에 인기를 얻었다고 믿는다. 일본의 경제 성장이 절정에 달했고 1960년대 말 학생 봉기가 일어났다. 젊은이들은 영화에 묘사된 전후 사회의 감정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28] 야마네는 또한 후카사쿠가 경력의 나머지 기간 동안 ''의리없는 전쟁''과 유사한 영화를 제작해 달라는 프로듀서들의 제안을 여러 번 받았지만, 자신이 흥미롭게 생각하는 영화로 넘어가고 싶어 항상 거절했다고 말했다.[29]
미국 감독 윌리엄 프리드킨은 후카사쿠의 나쁜 등장인물을 결코 구원하지 않고, 결국에는 선한 사람이 이기도록 하지 않는 특징이 자신에게 "심오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 미국 영화에서는 이런 것을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30]
2015년 칸 영화제 칸 클래식 섹션에서 4K 35mm 필름 원본 네거티브에서 Toei Labo Tech의 2K 디지털로 복원된 영화 버전이 상영되었다.[31]
1973년 (쇼와 48년) 1월 13일, 도에이 배급망을 통해 설날 영화 제2탄으로 공개된 야쿠자 영화이다. 감독은 후카사쿠 긴지이고, 주연은 스가와라 분타이다. 제작은 도에이 교토 촬영소 (쿄토사츠)에서 담당하였다. 후지필름 컬러, 시네마스코프, 99분, 영윤 번호: 17462. 야쿠자들 간의 항쟁을 소재로, 동료를 배신하고 배신당하는 것으로밖에 살아갈 수 없는 젊은이들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가 등장하기 전까지의 야쿠자 영화의 대부분은 촌마게를 뗀 시대극이라고 불리는 허구성이 강한 의협 영화였으며, 의리 인정이 두텁고 올바른 협객도를 걷는 영웅이 그려졌다. 1969년 (쇼와 44년)부터 시작된 스가와라 분타 주연의 「현대 야쿠자 시리즈」에서 이미 야쿠자를 미화한 기존 의협 영화의 상식을 뒤엎는 현실적인 악당을 주인공으로 했지만, 본작의 특징으로는, 그전까지의 의협 영화의 선역과 악역이 전통적인 정형의 전개를 보이는 듯한 양식미를 전혀 무시하고 살벌한 폭력 묘사를 전개한 점, 야쿠자를 현실적으로 폭력단으로 파악한 점, 수기→실화 소설→각본→영화라는 경위, 실존 야쿠자의 항쟁을 실록 노선으로서, 리얼리티를 추구한 점 등이 꼽힌다. 본작은 실록물의 선구자가 되었으며, 도에이 이미지 및, 일본 야쿠자 영화의 이미지를 결정지었다.
등장하는 야쿠자의 대부분은 돈에 욕심이 많고, 약자에게 강한 사회악으로서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의협 영화처럼 야쿠자를 미화하는 일은 없다. 일시적으로 영웅적으로 표현되는 캐릭터도 마지막에는 비참하게 살해되는 장면이 많다. 「의협 영화」는 안보 투쟁의 학생 운동의 고조와 궤를 같이 하며, 운동의 쇠퇴와 함께 「의협 영화」의 인기는 떨어져, 70년 안보의 패배를 겪고 등장한 것이 『의리 없는 전쟁』이었다.
본작은 야쿠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뛰어난 군집 활극이기도 하며, 암흑 사회의 일전 후사이기도 하며, 청춘 영화이기도 하며, 해외 작가로부터는 「뛰어난 바이올런스 영화」라고 칭송받았으며, 또한 자기계발로서의 측면도 있다. 실록이기 때문에,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단체는, 거의 전부 실존하는 (했던) 인물이며, 배역 이름은 모델이 된 인물·단체의 이름을 딴 것이다.
시리즈 전작의 서두나 중간 부분 등에서 인상적으로 사용되는 "야쿠자 영화 속의 내레이션"이라는 수법은, 카사하라가 1968년 (쇼와 43년)의 『도박꾼 총장 도박』에서, 처음으로 시나리오 단계부터 도입한 것으로, 「알 카포네는 19××년……」의 내레이터로 시작하는 『언터처블』을 흉내 낸 것이라고 한다.
; 흥행 성적
도에이는 당시 방화 메이저에서 유일하게 정월 흥행을 전후반으로 나누었기 때문에, 1973년 정월 흥행은 도에이만 전반 『쇼와 잔혹사 파라산』/『여죄수 사소리 제41잡거방』, 후반 『의리없는 전쟁』/『여두목』이었지만, 모두 롱 흥행이 된 쇼치쿠 『남자, 괴로워 寅次郎 꿈 베개』/『마이코 한다요 전원 집합!!』, 도호 『황홀한 사람』을 상대로, 전국적으로 지역 격차도 없이 대성황을 이루며 봉쇄 2주 만에 55,000명을 동원하여 방화 흥행에서 1위를 차지했다. 도에이는 1973년 1월 배급 수입으로 9억 5,000만 엔을 기록했으며, 한 달 배급 수입으로는 도에이 신기록을 세웠다. 도에이는 극장주 회의가 강했고, 블록 부킹을 견지하여 2주 상영이 결정된 일이었지만, 2주 배급 수입으로 3억 엔을 돌파하여 당시 도에이로서는 이례적으로 롱런 3주가 진행되었다. 배급 수입 3억 엔은 2009년 흥행 수입으로 환산하면 약 21~22억 엔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도에이의 관객층은, 협객물이나 호색물로 연령대가 높았지만, 본작의 대히트로 관객층이 조금 낮아진 것도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3주간 배급 수입은 약 5억 엔. 쇼치쿠, 도호 모두 롱런의 길이가 달랐기 때문에, 토탈 흥행 성적은 비교할 수 없다. 1973년 정월 흥행은, 외화에 다음 해 이후와 같은 회자되는 눈에 띄는 작품이 없었던 영향도 있었다.
제1작 제작 전에 시리즈화가 결정되었지만, 예상 이상의 대히트를 기록하여 배급 수입은 방화 중에서 연간 2위가 되었다. 스가와라 분타는 "다카쿠라 켄을 대체하는 도에이의 간판 스타" 등으로 평가받았다.
; 매스미디어 평
현기증을 느끼게 하는 듯한 거친 핸드 헬드 카메라에 의한 영상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생생함으로 다가오며, 익숙하지 않은 히로시마 사투리의 리얼리티와 쓰지마 토시아키의 고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주제곡의 단조로운 반복이, 독특한 리듬과 바이브레이션을 낳아 중추 신경를 흔드는, 획기적인 폭력 영화라고도 평가받았다.
『의리없는 전쟁』의 성공은 후카사쿠 킨지의 다이내믹한 연출, 참신한 카메라 워크, 절정기를 향하는 배우들의 연기, 실록 특유의 리얼리티, 종전 직후의 히로시마나 구레라는 무대 설정의 묘, 전국 시대의 "국도리 이야기"적인 스릴 등, 많은 복합적인 요인으로부터 성립되며, 그것들의 행복한 만남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역시 원작에는 없는 방대한 자료를 모아 시나리오로 정리한 가사하라 카즈오의 교묘한 각본, "뇌천 당죽 할(머리통을 쪼개는)" 히로시마 사투리의 응수", "히로시마 사투리의 셰익스피어"라고도 "혈풍 야쿠자 오페라"라고도 칭해진 히로시마 사투리의 주옥같은 명대사들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닛카베 프로듀서는 "가사하라 씨가 『의리없는 전쟁』 시리즈에서 남긴 가장 큰 공적은, 히로시마 방언, 야쿠자 말을 교묘하게 채택하여, 영화의 명대사라고 불릴 정도로 만든 것이겠지요."라고 말했다. 히로시마 출신의 타마키 겐지 마이니치 신문사 논설실 전문 편집 위원은 "제가 히로시마 출신이라서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이것이 '표준어'로 만들어졌다면, 전혀 다른 이미지가 되었을 것이다. '언령'이 두렵다. 히로시마 사투리에 의해 등장 인물 한 명 한 명과 그 대사에 생기가 불어넣어졌다" " (명대사들이) "표준어"였다면, 박력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등이라고 논하고 있다. 이즈쓰 카즈유키는 "전편을 히로시마 사투리로 통일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고, 오시이 마모루는 "그 히로시마 사투리는 대단한 리얼리티가 있었다. 그 이후, 야쿠자라고 하면 모두 히로시마 사투리가 되어 버렸다(웃음). 그런 스타일을 만들어 버린 셈이다. 야쿠자 영화라고 하면 『의리없는 전쟁』이다, 라는 식으로 되어 버린 것이다. 나가리 스타일의 협객 영화라든가 전후파의 패배 영화 같은 것은 전부 날아가 버렸다. 그 정도 임팩트가 있었다" 등이라고 논하고 있다. 바바 야스오는 "야쿠자 역은 히로시마 사투리. 이것을 발견한 것이 『의리없는 전쟁』 최대의 발명이 아닌가"라고 논하고 있다. 본작의 대사는 히로시마 사투리 대사 그대로, 오늘 매스 미디어에서도 종종 인용된다.
NHK는 본 시리즈를 자주 다루었고, 가사하라 카즈오와 후카사쿠 킨지가 잇달아 사망한 직후인 2003년 5월 3일 방송된 ETV 스페셜 " “의리없는 전쟁”을 만든 남자들"에서, 처음으로 정면으로 야쿠자 영화를 다루었다. 야쿠자 영화를 NHK가 특집하는 것은 획기적이었고, NHK의 긴 역사에서도 이것이 처음이었지만, 이 영화가 단순하게 야쿠자 영화의 범주에 수용되지 않는다는 증명이기도 했다. 21세기를 경계로, 텔레비전은 모든 각도에서의 규제를 강요받고, 특히 "에로"와 "폭력"을 그리는 것은, 지상파에서는 궤멸 상태가 되어가고 있던 중, 그러한 풍조에 이의를 제기하는 내용으로, 스타 배우는 물론, 촬영의 요시다 사다지나 액션 무술의 우에노 류조 등 숨은 공로자에게도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이 중후한 프로그램의 진행은 NHK 아나운서・구로다 아유미, 영화 평론가・야마네 사다오와 『의리』의 열광적인 팬으로 알려진 이즈쓰 카즈유키였다. 2016년 5월 18일 방송된 『어나더 스토리 운명의 분기점』 "영화 “의리없는 전쟁” 정열이 혁명을 낳았다"에서도, 다시 『의리없는 전쟁』을 다루어, 본작을 "'''일본 영화의 금자탑'''"이라고 소개했다. 2017년 6월 10일 NHK E 텔레ETV 특집에서 방송된 " “원폭 슬럼”이라고 불린 거리에서"에서는, 도입부의 내레이션에서 "『의리없는 전쟁 히로시마 사투편』은 원폭 슬럼에서 로케가 행해졌다"라고 소개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기에 걸쳐, 일본은 하나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고도 경제 성장 정책이 정체되고, 각종 공해의 발생이나 대학 분쟁의 파급에서 보이는 것처럼, 지금까지 억눌려 있던 정치 사회의 왜곡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경제 지상주의로 기울었던 전후의 노선에 대해, 깊은 내성을 요구하는 움직임이었다. "의리없는 전쟁 시리즈"는, 이러한 세상 속에서 등장해 나온다.[92] 제1부는 종전 직후, 제2부는 쇼와 27년경, 제3부와 제4부는 쇼와 30년대 후반, 제5부는 쇼와 40년대를 무대로 하고 있다. 전후사를 다른 각도에서 다시 바라본다는 의미에서, 이 연작은 바로 시대의 산물이었다. 영화는 지금까지 은폐되어 온 야비하고 외설적인 것에 시선을 돌리고, 이것을 백일하에 드러내려 한다. 여기에 제시되고 있는 것은, 전후 일본의 뒷면 역사이다.
제1부의 마지막 장면 근처, 마쓰카타 히로키가 연기하는 사카이가, 스가와라 분타가 연기하는 히로노에게 말하는 "노, 쇼조.. 와시라요, 어디서 길을 잘못 들었는고.."라는 대사가, 유독 인상적이다. 부하들에게 모두, 오히려 경멸당하면서, 가마로 떠받들여지는 야마모리 두목. 그는 비웃음당하고, 바보 취급당하면서, 사실 제대로 모두를 좌지우지하고, 통어하고 있다. 이 근처의 존재감은, 왠지 전후 일본의 민주주의의 상징인, 천황이라는 존재를 생각하게 하기도 하여, 조금 섬뜩하다. 그러한 전후사 영화를, 후카사쿠는 스토익한 도에이 정통 야쿠자 영화의 "장례식형 음습한 미학"에 대항하는, 아나키적인 도에이 전후파 야쿠자 영화의 "축제형 쾌활한 행동주의"를 가지고 만들었다. "실록 노선"의 기수가 된 후카사쿠는, 일본의 전후사에 대해 강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도에이 실록 노선 전반이 범용적인 야쿠자 영화로 타락하지 않고, 시대를 관통하는 비판력을 갖게 된 것도, 전후사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던 것을 잡아내고 싶다는 의지가, 제작자 쪽에 확고하게 있었기 때문이다. 허식을 벗겨내고, 내실에 접근하려는 이러한 움직임은, 시대의 추세였다고 할 수 있다.
; 평론가 평
가모시타 신이치는 "『의리없는 전쟁』은, 일본 영화의 이정표가 되었다. 출연자는 각자의 베스트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지만, 이들 누구보다도 대스타가 있어, 그 매력이 전편을 지탱하고 있다. 그것은 히로시마 사투리이다"라고 논하고 있다.[93] 『의리없는 전쟁』에서 중요한 연출 효과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히로시마 사투리이다. 현역의 간사이 계열 조직 관계자가 섬뜩하고 둔탁하다고 평가한다. 반슈 사투리로는 더럽고, 하카타 사투리로는 귀엽고, 가고시마 방언으로는 의미 불명이라는 점에서 당당한 극도 방언 베스트라고도 평가된다. 격렬한 이야기의 연속은 임팩트가 대단하며, 히로시마 사투리는, 이 영화를 계기로 좋든 싫든 전국으로 퍼졌다. 히로시마 야쿠자도 일약 전국구가 되었으며, 히로시마는 "야쿠자의 거리"라는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공개 당시에는 익숙하지 않은 히로시마 사투리의 연발에 당황한 영화 팬도 많았지만, 여러 번 감상하면서 어느 영어 교재처럼 통달하게 되었고, "의리 팬"은 모두 히로시마 사투리의 바이링구얼이 되었다. 제1작 공개 당시에는, 오코노미야키도 히로시마 카프도 유명하지 않아, 일반 사람들에게는 "히로시마는 원폭뿐만이 아니구나"라는 감상을 받았다.
타마키 겐지는 "제1작이 공개된 1973년 가을, 일본은 오일 쇼크를 겪게 되었고, 고도 경제 성장의 꿈에서 완전히 깨어나게 되었다. 지가 폭등, 광란 물가, 화장지나 세제의 사재기. 한때 마치 일반 사회 쪽이 ‘의리없는’ 양상을 띠게 된 관점이 있었다. 양식미화된 협객 영화에서 벗어나, 야쿠자 세계를 빌려 인간 사회의 허세와 허식을 벗겨 보여준 『의리없는 전쟁 시리즈』. 보면, 뭔가 거울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아마, 그 영상에 현실 사회가 겹쳐 비춰지기 때문일 것이다" 등이라고 논하고 있다.
시나다 유키치는 『선데이 매일』 1973년 2월 4일 호에, 제1작의 처음 중 하나로 보이는 영화 평을 게재했다. "『의리없는 전쟁』은 후카사쿠 킨지 감독의 다이내믹하고 스피디한 연출이 볼거리인 야쿠자 액션 영화이다. 거기에 배우들이, 모두 잘한다. 일찍이, 일본 영화의 남자 배우들은 병사를 연기하면 모두 호연한다-라고 말해졌는데, 이 영화 등을 보고 있으면. ‘야쿠자를 연기하면…’이라고 고쳐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될 정도이다 (중략) 그리하여, 영화는, 다양한 형태의 권력 투쟁이 필연적으로 만들어내는 다양한 살인의 연속이 되고, 사건을 처리하는 솜씨 좋은 연출이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동시에 우리는, 야마모리 같은 무윤리적이고 현실적인 권력 지향형 인간만이 성공하는 사회가 존재해도 괜찮은가 - 라는 작가 내면에 숨겨진 분노가, 이 영화의 윤리적인 뼈대가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이 단지 야쿠자 사회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일본적인 사회 구조에 대한 분노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고등학교 졸업까지 자택 뒤에 무라카미조 (영화에서는 오토모 연합회)의 사무실이 있었고, 100미터 앞에 오카조 (일부에서는 가이토조, 2부에서는 무라오카조)의 사무실이 있었으며, 근처에서 야쿠자끼리 피 흘리는 소동을 여러 번 보았다는 르포 라이터 마쓰오카 시게루는, 제2부에서 지바 신이치가 연기한 무라카미 마사아키에게는, 바이 후, 식량난 시대에 그가 먹여준 호화로운 냄비 우동 맛을 잊을 수 없고, 만나면 "많이 컸네"라고 귀여움을 받았으며, 마찬가지로 제2부에 잠깐 등장하는 카게우라 타쓰지로라고 하는 기요오카 키치고로가 자신의 집에 자전거를 맡기고 "학교에서 괴롭힘 당하고 있지는 않지. 괴롭힘을 당하면 바로 와시에게 말해"라는 추억을 언급, 『영화 평론』 1973년 7월 호에 "기괴한 《실록》 영화가 탄생했다" 등이라고 비판을 게재하고 있다. 간접적으로 미노 고조에게 의견을 물어보니 미노는 "본(이호시 코이치)이 된 것은 사실의 3분의 1. 게다가 영화가 된 것은 책의 3분의 1"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마쓰오카는 "미노의 수기는 어디까지나 그를 중심으로 쓰여진 것이며, 전후 십수 년에 걸친 감옥 생활의 기간은, 새롭게 들어오는 복역자에 의해 가져온 정보와 면회자에 의해 단편적으로 알려지는 것만을 적고 있었다. 즉, 전체적으로 히로시마 야쿠자 전쟁을 이야기하고 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공백에 대해서 보충적인 설명은 필요하다. 하지만, 리라이터로서 이호시 코이치가 그 임무를 맡은 것은 실패였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때때로 미노를 제쳐두고 필요 이상으로 자신의 해석을 전면에 내세워, 이 귀중한 다큐멘터리 본래의 것을 희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등이라고 평하고 있다. 그 예로 "전후 야미 시장 시대의 야쿠자는 전국 시대의 군도와 같아, 노점에 나와 있는 얼마 안 되는 식량과 술을 빼앗거나, 흥이 오르면 노점째로 말아버리는 늑대였다. 이것이 뚝 빠져 있는 것은, 역시 야쿠자 찬가를 하겠다는 영화 제작의 기조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야쿠자의 생활 방식의 묘사에도 문제가 있다. 바쿠토들이 바쿠치에 열중하고, 테키야들이 노점 장사에 열중하면 족하다는 시대가 아니다. 경호원 영업이나 약의 매매 외에, 그 중에서도 가장 수익을 올리고 있던 잔혹한 매춘 관리가 전혀 그려져 있지 않다. 나는 몇 번 목격했지만, 도망치려고 했던 여자에 대한 린치는 처절한 것이었고, 특고도 그 정도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철저한 것이었다. 나는 나카노 톤에서 술을 마신 후, 종이〇정 택시(극중의 우치모토조) 근처에서 몇 명의 야쿠자에게 권총을 겨눈 적이 있었고, 그 때는 술이 깰 뿐만 아니라 오줌을 찔끔거릴 뻔했다. 나중에 들으니, 며칠 전에 같은 곳을 방문한 두 명의 젠토를 며칠 전에 오사살했다고 들었다. 영화에는 그러한 공포감은 어디에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 사이타마현의 혼조 사건을 그린 『폭력의 거리』에서는 그 부분을 압도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등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관련 서적의 저서도 있는 스즈키 요시아키는 "전후의 불탄 터, 암시장에 모이는 젊은이들의 폭력 군상은, 쇼와 원록의 끝의 시라케 세대라고 불린 당시 젊은이들에게 강렬한 카운터 펀치를 먹였다"라고 평가했다.
나가베 히데오는 "굉음과 함께 원자탄 투하의 버섯구름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일본 각지의 전후의 불탄 터와 거리의 광경을 나타내는 흑백의 뉴스 영상에 이어, 당시의 암시장의 화면에 색채가 더해져 극중의 세계가 되어, 『쇼와 21년』『히로시마현 구레시』라고 자막으로 고해진다. 잇달아 등장하는 극도의 각 조의 간부에 분하여, 대립하는 상대를 위협하거나 협박하거나 하는 주연급이나 실력파들로 가득한 배우진이, 아무리 봐도 모두 진짜 야쿠자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배우의 연기력에 더해 당시에는 신예였던 후카사쿠 킨지의 뛰어난 연출력에 의한 것이리라. 배우 전원이 진짜 야쿠자로 보이는 가운데 이채를 띠는 것이, 주인공의 히로노 쇼조를 연기하는 스가와라 분타이다. 복원 병사에서 친구의 싸움에 가세하여 야쿠자가 되지만, 히로노는 고함도 위협도 협박도 하지 않는다. 자신이 생각한 것을 히로시마 사투리를 살린 절묘한 대사로 말할 뿐. 즉 스가와라의 연기는 야쿠자 영화에는 드문 자연스러운 모습인 것이다. 그리고 입으로 말한 것은 반드시 실행에 옮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남자는 신뢰할 수 있다는 실감이 솟아난다. 또 각본의 가사하라 카즈오는 양식미를 중시한 기존 노선과 작별하고, 슈퍼를 다용하여 대립하는 복잡한 인간 관계를 즉시 파악하게 하는 실록 야쿠자 영화 노선을 개척한 시야의 넓이와 역량의 풍요로움은 찬탄할 만하다. 히로노는 종반, 맹우인 사카이 테쓰야가 살해당하고, 대립하는 각 조의 두목들도 검은 상복으로 참석한 대규모의 장례식장에, 노타이에 회색 (엷은 자색?)의 더블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 사카이의 영정에 대면하면 품에서 권총을 꺼내, 제단 위의 부의금의 산과 각 조의 조화의 명찰을 난사한다. 그의 권총은 야쿠자의 조직 전체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핏빛 얼굴로, ‘히로노! 너, 배짱 두둑하게 하는 거냐!’라고 폭거를 나무란 두목 야마모리 요시오를 노려보고, 불적한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야마모리 씨, 탄은 아직 남아있어요.’. 이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은 도에이 협객극에 대한 조종을 들음
4. 1. 한국 사회에 대한 시사점
'의리없는 전쟁'은 권력 집단의 부패와 폭력, 그 안에서 벌어지는 암투와 배신을 통해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27] 이 영화는 권력의 집중과 남용이 초래하는 폐해를 경고하며, 사회 정의와 투명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욕망과 배신, 그리고 그로 인한 파멸은 정치권과 재벌 등 권력 집단의 행태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한다. 특히, A.V. 클럽의 노엘 머레이는 후카사쿠의 야쿠자들이 "자신들에게 가장 이익이 될 때만 명예 규율을 지키며, 그렇지 않을 때는 무차별적으로 괴롭히고 죽인다"고 지적했다.[25] 이는 권력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의리없는 전쟁'은 단순한 갱스터 영화를 넘어, 권력과 부패, 그리고 인간의 욕망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제공하며, 이는 곧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으로 이어진다.
5. 논란과 비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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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Yakuza Papers: Battles Without Honor and Humanity Complete Boxed Set - Special Features
Home Vision Entertai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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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7、8秒のフィルムをやるから、悪役の華を咲かせて死ね」俳優たちに愛された監督・深作欣二の仁義 「仁義なき戦い」外伝〈3〉
https://www.daily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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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Kinji Fukasaku, 72; Japanese Director of Edgy, Violent Fil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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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Yakuza Papers: Battles Without Honor and Humanity Complete Boxed Set - Special Features
Home Vision Entertai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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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回生産限定>仁義なき戦い Blu-ray BOX [Blu-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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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Yakuza Papers: Battles Without Honor And Humanity: The Complete Box 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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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Yakuza Papers: Battles Without Honor & Hum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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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ese Genre Firebombs Send Codes of Honor up in Fl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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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ature of violence in Fukasaku Kinji'sJingi naki tatakai(War without a code of ho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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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Yakuza Papers: Battles Without Honor and Humanity Complete Boxed Set - Special Features
Home Vision Entertai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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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Yakuza Papers: Battles Without Honor and Humanity Complete Boxed Set - Special Features
Home Vision Entertai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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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Yakuza Papers: Battles Without Honor and Humanity Complete Boxed Set - Special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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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nes Classics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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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義なき戦い』のモデル美能幸三 頭がキレ愛読書はモー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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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映のお家芸 実録路線&アニメがデジタルで復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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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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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映画 オールタイム・ベストテン】- 参考資料 創刊80周年記念時のオールタイム・ベストテン(1999年発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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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hi.com(朝日新聞社):1位は東京物語とゴッドファーザー キネ旬がベスト10 - 映画 - 映画・音楽・芸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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暴力と戦った中国新聞 - 菊池賞の栄に輝く "ペンは暴力よりも強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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活字の底力 2010国民読書年 「ちゅーピーと学ぼう!」 池上彰さん講演会詳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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終戦直後の広島県を舞台にした『仁義なき戦い』 - ことばアップデー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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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義なき戦い」豪華ブルーレイBOX発売 13年に記念上映祭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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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評 仁義なき戦い 菅原文太伝 松田美智子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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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戸津井康之のメディア今昔(2)】日本映画を救った「仁義なき戦い」…“起死回生”の陰に「映画づくりの情熱」p2(Internet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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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二木会 - 東京修猷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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キャメラマン吉田貞次 聞き書き 満映から『仁義なき戦い』ま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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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良役者 梅宮辰夫が語る伝説の銀幕俳優破天荒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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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娯楽〕 路線もの映画 そのプラスとマイナス 企画、宣伝に安定性 一つの型にはまる欠点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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岡田茂東映社長に聞く・下 〔回想のマキノ映画・その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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岡田茂・東映名誉会長が死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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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の映画人 日本映画の創造者た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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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ざっくばらん対談】 ー異色経済人登場 映画界のあばれん坊 岡田茂(東映社長) ホスト勝田健
創出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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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波に乗る日本映画の大作主義松竹が先鞭、東宝が数字で裏づけた
東京映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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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日本映画四社首脳に直言するー企画・製作面から見た四社の現状と問題点―
東京映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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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悼・高倉健 銀幕を共にした盟友が語る「高倉健」という人物(3)石倉三郎は役者としての気概を教えら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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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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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本誌しか書けない秘話! 高倉健vs菅原文太 実録ヤクザ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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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最後の活動屋 岡田茂 映画こそ我が人生 実録!! 東映六十年(76) 「渡哲也を石原プロから引き抜き作戦」
埼玉新聞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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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義理と人情…男の中の男 公私にわたり親交あったスポニチOBが渡さんを悼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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渡哲也さん秘話 「高倉健の後釜に」東映社長のオファーを断った“仁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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没後4年「渡哲也」が受け継いだ「石原裕次郎」の“人生流儀” 「石原良純」「みのもんた」が証言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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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家」の履歴書 このヒトはどんなイエに住んできたか
文藝春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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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漫才師の芸能界交友録】第19回 杉作J太郎① “パパちゃん”に興味持つ/角田 龍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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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志賀勝】菅原文太に松方弘樹…伝説の斬られ役が見た仁義なき“京都芸能”タブ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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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出典調査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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映画『ANPO』公式サイトプロダクションノー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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輸入盤DVDオンラインショップ:DVD Fantasium : Edltor's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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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藝春秋」にみるスポーツ昭和史 第一巻
文藝春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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芸能 荒井晴彦、森達也、白石和彌、の『仁義なき戦い』論【ミニシアター押しかけトーク隊第1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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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学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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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郷輝彦「現場が凍った萬屋錦之介と深作欣二の衝突」 | アサ芸プラ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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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仁義なき戦い」40年目の壮絶秘話(1)「顔のシワ作り」に励んだ松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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徳間書店
201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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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極悪非道の千葉真一」2本立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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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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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キングダム2』清野菜名は“宿命を背負う女戦士”が最も似合う俳優だ 武道家が剣術を解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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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腹を刺す、耳を削ぎ落とす、腕は根元から切断する…呉で最も恐れられたヤクザの“狂気”に満ちた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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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仁義なき戦い』俳優陣は本物のアウトロー!梅宮辰夫が明かす豪快エピソード!-シネマトゥデ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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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有吉反省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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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BIG tomorrow
青春出版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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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週刊現代
2008-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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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田中邦衛インタビュー
ムービーマガジン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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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産経新聞
2009-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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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小林旭、先輩からのイジメに日本刀で対抗!? 超ド級のエピソードに溢れた昭和スターの人生【書評】
https://ddnavi.com/r[...]
KADOKAWA
20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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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仁義なき戦い(完結編)に見る日本経済再生への道
https://monju-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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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男なら一度は会社で使ってみたい『仁義なき戦い』気分爽快名セリフp=2
http://www.excite.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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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映画秘宝
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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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学ぼう〕私の先生 連帯責任 ずっと後で納得 福本清三さん 俳優
読売新聞社
201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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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book
東映が誇る黄金コンテンツ、『仁義なき戦い』の総選挙情報です!
https://www.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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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アサヒ芸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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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ールタイム・ベスト 映画遺産 映画音楽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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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ールタイム・ベスト 映画遺産 映画音楽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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俳優会館|東映株式会社 京都撮影所|Toei Studios Ky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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どこかで誰かが見ていてくれる ―日本一の斬られ役・福本清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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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NEWSポストセブン|代々木忠監督 『仁義なき戦い・代理戦争』のモデ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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週刊ポス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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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 コ ラ ム ◇ 私の半生(その一)
http://www.m-kiuchi.[...]
200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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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葉真一・田中邦衛・福本清三へ贈る「仁義なき」追悼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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フォンテーン/ギークピクチュアズ
2024-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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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風紋記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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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海民友新聞社
2024-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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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メコ芸者、わりゃあ黙っとれ! <深作欣二上映祭>仁義なき戦いオールナイト上映に千葉真一が登場決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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ノンフィクションW:「映画『仁義なき戦い』を書いた男」脚本家・笠原和夫の綿密な取材の記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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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筆洗 映画「仁義なき戦い」(一九七三年)の中に組のトップでありなが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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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新聞東京本社
2014-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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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義なき戦い」舞台裏に迫る番組へ千葉真一ら出演、川谷拓三の努力を妻が証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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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秦の90年 名作案内 『仁義なき戦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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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橋慶彦氏 広島カープ入団して最初に驚いたのは…「仁義なき戦いの世界ですよ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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内田浩司のまくり語り ただ〝なんとなく〟感じる競輪選手のたたずま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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産業経済新聞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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特別鼎談 日本映画の黄金時代 もう一度見たいとっておきの50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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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露関係・露朝関係は映画『仁義なき戦い』と同じである 専門家が指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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ニッポン放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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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週刊朝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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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キネマ旬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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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ロックンロール・内田裕也さんが今年も登場!“裕也節"が炸裂するロックなトークにファンは大喜び!!—映画『共犯者』舞台挨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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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都国際映画祭
2024-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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サルに教える映画の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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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義なき戦い”研究家・井筒監督、深作監督エピソードを熱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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特集 華の乱 深作欣二/松田優作インタビュー
キネマ旬報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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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と東映映画(Part4)『いまも色あせない『仁義なき戦い』の気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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週刊朝日百科 「週刊昭和21 昭和48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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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優で観るか、監督を追うか — 本音を申せ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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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映チャンネルの年末年始は「仁義なき戦い」など名作映画三昧! 親子で楽しめる作品も盛りだくさ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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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ウの目タカの目》 ゴールデン・アロー各部門賞決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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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日ベストテン映画祭 1位リス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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連載 - 図書新聞 若年暴力映画の現在とその意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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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義なき戦い』が北米で蘇っていた (Excite Bit コネ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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祝オスカー2冠!『ジャンゴ 繋がれざる者』クエンティン・タランティーノ監督 来日会見レポー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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深作欣二監督没後10年 「仁義なき戦い」公開40周年 息子、健太監督が語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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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編ディスク5枚+特典ディスク1枚『仁義なき戦い 総集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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消された昭和の日本映画 この25本を見よ!【特集3】 鈴木義昭vs.藤木TDC 埋もれた映画を語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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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義なき戦い」がフィギュアになった! - ZAKZ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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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特冊新鮮組D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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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大路「寂しい」道頓堀東映さよなら興行 - 大阪ニュー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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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開から40年!今も語られる『仁義なき戦い』の魅力を解剖 - シネマトゥデ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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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でも親しまれた文太さん 広島弁で名キャッチフレーズ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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菅原文太さん死去:「仁義なき戦い」広島弁を全国区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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毎日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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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本勲氏 壮絶半生語る!NHK・BSハイビジョン9・3放送 スポニ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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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広島弁使って口調マネた」本物ヤクザもほれた映画のセリフ
https://www.tokyo-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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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みなさんのおかげでした」終了発表、元チェッカーズ鶴久は感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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アイ・シー・ア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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ジョニデが広島弁で大暴れ!? 主演作の『仁義なき戦い』パロディ動画が話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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マイナ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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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総力特集「俺たちの心を震わせたマンガたち」〔少年マガジン〕『1・2の三四郎』
クレタパブリッシン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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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PIE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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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ONE PIECE FILM GOLD』は現代版の任侠映画!? 尾田栄一郎がモチーフとした作品を探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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映画『極道兵器』人間兵器のシーンはメキシカンスタイルのプロレス技から誕生!坂口拓監督・山口雄大監督インタビュ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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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映画評書き起こし】宇多丸、『溺れるナイフ』を語る!(2016.11.12放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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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of Warships」、「ハイスクール・フリート」スペシャルトークステージが開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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対談 きうちかずひろ+桂千穂 『今、ハードボイルド映画が面白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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岡田准一主演、妻光役に中谷美紀!2014年度大河『軍師官兵衛』新キャスト発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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シネマシティ|ニュース 『仁義なき戦い』公開記念 惹句(じゃっく)師・関根忠郎氏トークショ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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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筑摩書房 究極のドラマ 実録ヤクザ映画で学ぶ抗争史 / 山平重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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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サイゾ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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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の映画が観たい映画専門チャンネル「ムービープラス」 9月(#1) 哀川翔のオールタイム・ベス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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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義なき戦い” 敗者は誰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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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戯なき戦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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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オンデマンド | あまちゃん 85回 おらの仁義なき戦い
https://www.nhk-o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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ユニコーンはブログもお好き!? - 1991 9/30 7th Album 「ヒゲとボイン」 発売 エキサイトブログ
https://unicorn-os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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氣志團×ユニコーン3時間半師弟対決、團長が阿部義晴翻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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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義なきキリスト教史』 新刊超速レビュ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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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特別座談会】 自主映画の明日を語ろう
キネマ旬報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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帝京メイト | 青春のころ Vol.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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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027 - 全国映画よもやま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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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江悠インタビュー - Hoga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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奥田庸介監督 最新作『クズとブスとゲス』始動! - クラウドファンディング
https://motion-ga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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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密輸 1970』緊急来日したチョ・インソンと大谷亮平が初対面!リュ・スンワン監督は『修羅雪姫』『仁義なき戦い』ら日本映画の影響明か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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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STRONGEST INTERVIEW 『フリー・ファイヤー』監督ベン・ウィートリーインタビュー 『この映画は『仁義なき戦い』の影響を受けているんだよ』
洋泉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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タランティーノ、故・深作欣二監督譲りの“仁義”への思いを熱弁! | シネマ ネッ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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にっぽんの刑事スーパーファイル
洋泉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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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特別座談会】 自主映画の明日を語ろう
キネマ旬報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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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武田信玄の父・信虎を新解釈で描く『信虎』寺田農×金子修介
洋泉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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アサヒ芸能
アサヒ芸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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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鎌倉殿の13人』は大河ドラマを変えた、『仁義なき戦い』がヤクザ映画を変えたよう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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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学館
202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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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漫画家本vol.6 あだち充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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いしいひさいち 仁義なきお笑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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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高田文夫氏 日芸・落研の1年後輩だった森田芳光監督の思い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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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学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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濃厚民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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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が如く2』 庄司英徳&坂本英城 楽曲インタビュ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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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排害的で何が悪い?敵から守るときに「仁義なき戦い」のように独立心が必要だ!武蔵野市議会最終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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選挙ドットコ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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筑摩書房 ミッキーかしまし 西加奈子 著者インタビュ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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深作欣二「蒲田行進曲」風間は撮影直前に指名 | アサ芸プラ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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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葉真一語る役者魂に「仁義なき戦い」大好き芸人が心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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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特別寄稿:「たどるクセ」(斎藤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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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in'シネマニア! WOWOWオンライ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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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ボクらの時代」2014年9月21日(日)放送内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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テレビの枠収まらぬ磯村勇斗は令和の銀幕スター候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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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ヤクザと家族 The Family』で新たな時代を背負って見せた磯村勇斗、“ヤクザ映画”と憧れの俳優を語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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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泉谷しげる、菅原文太さん死去にショック「信じたくないし御悔やみしたくもない」
http://www.sponichi.[...]
キネマ旬報
1979-05
[180]
간행물
週刊朝日
1974-07-26
[181]
간행물
週刊プレイボーイ
2007-11-05
[182]
방송
安藤和津 TEPCOトークマルシェ
문화방송
2010-04-25
[182]
웹사이트
安倍元首相、政界引退後にヤクザ映画撮る?トーク番組で映画監督の夢語る
https://eiga.com/new[...]
[182]
간행물
아사히예능
2010-05-20
[183]
서적
映画「孤狼の血」 公式ビジュアルガイドブック
[184]
웹사이트
「仁義なき戦い」に負けない役所広司
https://web.archive.[...]
[185]
간행물
키네마준보
2018-04
[186]
학술지
『에도가와 란포전집 공포기형인간』일본 첫 DVD화&이시이 테루오의 세계 기적!80년대의 저주가 풀려 드디어 소프트화
요센샤
[186]
웹사이트
”명화좌 최후의 요새”『전설의 컬트 영화관 오이무사시노관의 6392일』간행 기념 이벤트
https://note.com/eig[...]
note
2023-12-04
[186]
웹사이트
The 오이무사시노관 셀렉션<3월/4월 작품
https://www.toei.co.[...]
토에이
2024-12-18
[186]
웹사이트
좌담회「명화좌에 가자」
http://www.siff.jp/s[...]
신유리영화제
1998-10-10
[187]
웹사이트
영화관백경 그 일 -명화좌 최후의 요새- 오이무사시노관 오노 지배인에게 듣는다 입문!! 오이무사시노관
http://www.cinemajou[...]
1990-06-01
[188]
뉴스
『세계의 기타노』개선으로 칸이 끓었다
http://www.daily.co.[...]
2010-05-18
[188]
뉴스
기타노 다케시 감독, 칸에서 사인 공세! 질문 공세! 「내 영화는 실패의 반복이라서」【제63회 칸 국제 영화제】
https://www.cinemato[...]
2010-05-17
[188]
뉴스
기타노 다케시 감독, 칸 국제 영화제에서 회견 「정신 차려보니 칸에 있었다」
https://www.oricon.c[...]
2010-05-17
[189]
간행물
CUT
록킹온
2010-06
[190]
웹사이트
기타노 다케시 감독, 신작 「아웃레이지」를 말하다
http://www.nikkei.co[...]
[191]
간행물
영화비보
요센샤
2010-07
[192]
서적
아웃레이지 오피셜 가이드
닛케이BP무크
2010
[193]
뉴스
도쿄스포츠
2010-09-16
[194]
웹사이트
「아웃레이지 비욘드」 기타노 다케시 감독 「인의없는 싸움」의 저주를 풀다
https://web.archive.[...]
[195]
웹사이트
동아시아에 있어서의 트랜스/내셔널 액션 영화 연구 : 냉전기 일본・한국・홍콩 영화의 남성 신체・폭력・마켓
https://repository.d[...]
도쿄대학 학술기관 리포지토리
2024-09-07
[196]
웹사이트
후카사쿠 킨지의 폭력, 촬영 중에는 계속 떨고 있었다
https://www.asagei.c[...]
[197]
웹사이트
영화의 나락 호쿠리쿠 대리 전쟁 사건
http://shukan.bunshu[...]
문예춘추
[198]
웹사이트
치바 신이치&후카사쿠 킨지! 영화 『도베르만 형사』가 첫 DVD화!
https://www.cdjourna[...]
CDJournal.com
2008-11-12
[199]
뉴스
AKB48그룹 「인의없는 싸움」 무대화!11월에 하카타좌 오기노 유카 등 NGT멤버도 출연
https://www.sponichi[...]
스포츠닛폰신문사
2019-08-12
[199]
웹사이트
【AKB48그룹 총집결!「인의없는 싸움~그녀(여자)들의 사투편~」2019년 11월 상연
https://www.akb48.co[...]
2019-08-11
[199]
뉴스
HKT48의 위기, 「전원과 이야기했다」 1기생 중심으로 단결의 규슈 투어
https://www.nishinip[...]
[[니시니혼신문사]]
2021-10-01
[199]
웹사이트
地元・博多座の舞台『仁義なき戦い』に出演するHKT48メンバー16名からメッセージ!
https://www.walkerpl[...]
[200]
웹사이트
하카타좌 개장 20주년 기념 AKB48그룹 특별공연 제1부「인의없는 싸움」캐스트 발표 안내
https://www.akb48.co[...]
2019-09-22
[201]
웹사이트
AKB48그룹 특별공연 |공연안내|후쿠오카의 연극전용극장 하카타좌
https://www.hakataza[...]
2019-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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